마이다스동아일보:[98바캉스특집]

조류학자 윤무부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

희귀 조류의 낙원
강원도 영월 법흥사

강원도 영월 법흥사는 한마디로 희귀 조류의 낙원이다. 새를 따라 평생을 살아 온 사람으로 우리 나라에 아직 이런 지역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내가 법흥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약 10년 전, ‘까막딱따구리 소동’으로 온나라가 시끄러웠을 무렵이다. 천연 기념물 제242호인 까막딱따구리는 그즈음 수년 동안 생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던 상태였다. 멸종된 것은 아닐까 우려하고 있었던 터에 까막딱따구리가 살아 있다는, 그것도 가족이 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었다. 야생에서 까막딱따구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알려진 장소가 바로 강원도 영월 법흥사였다.

매스컴을 통해 까막딱따구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안 나는 학생들과 당장 생태 파악에 나섰다. 영월은 지금도 다른 곳에 비해서는 개발이 많이 되지 않은 지역이다. 그러니 10여 년 전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까막딱따구리를 찾기 위해 수년 동안 산과 들을 헤맨 것에는 못 미치지만 초행길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법흥사는 작은 절집이었던데다 희귀 조류가 살 만큼 깊은 산중이었던 까닭에 처음 찾아가는 길은 힘들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원주를 거친 뒤부터는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물어 가며 찾는 수밖에 없었다. 물어물어 제천을 지나 영월 읍내까지는 찾아가는 데 무려 5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러나 법흥사에 도착해 까막딱따구리 가족을 보는 순간, 법흥사를 찾아오는 동안 힘들었던 일은 순식간에 잊어버릴 수 있었다. 법흥사 경내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는 새끼까지 거느리고 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교수건 학생이건 할 것없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얼싸안고 기뻐했다.

때가 마침 6월이었는데 6월은 까막딱따구리가 한창 새끼를 기르는 기간이다. 어린 새끼 입에 먹이를 넣어 주고 어디론가 훌쩍 날아갔다 다시 먹이를 물고 돌아와 새끼를 보살피는 까막딱따구리의 모습은 새의 생태에 익숙한 나에게도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

나와 같은 조류학자들은 새가 있는 곳이라면 산과 들, 강,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다니다 보니 짐승이 편히 살 만한 장소를 보는 눈이 트였다. 법흥사 일대는 한눈에 보기에도 생태계의 보고, 그 자체였다.

법흥사는 큰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한 ‘사자산’ 밑에 자리잡고 있다. 절 주변에는 1백년 이상 된 참나무림과 소나무림이 있고 그리 넓지는 않지만 큰 개울물이 흐르는 평지도 있다. 30년 이상 새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녀보았지만 영월 법흥사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도 적은 편이었다. 나와 일행은 내친 김에 하루 더 머무르며 주변에 서식하는 조류를 조사하기로 했다.

그날 밤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흥분에 들떠 있기도 했지만 호랑지빠귀의 울음소리가 무서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호랑지빠귀는 밤에 귀신소리를 내며 울어 일명 ‘간첩새’로도 불리는 새다. 한밤중에 암수가 번갈아 ‘휘휘’ 휘파람소리를 내면서 우는데 온몸이 오싹하고 간담이 서늘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조류 생태조사에 나섰다. 우리의 예상대로 법흥사 주변에는 온갖 종류의 산새들이 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천연 기념물인 올빼미와 수리부엉이를 발견한 일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법흥사를 희귀 조류의 낙원이라 부르는 까닭은 같은 지역에 천연 기념물 3종이 서식하는 장소가 국내에는 이곳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월 법흥사는 아직 관광지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몇 년 전 입구의 도로가 포장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절로 알려지면서 찾는 발길이 잦아지는 추세다. 조류학자로서 ‘찾는 발길들이 늘어나면 새들의 낙원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법흥사에 가 봐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조용한 곳을 원하는 가족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한적한 산속에서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피로가 풀릴 것이다. 특히 여름 휴가지로 법흥사 일대를 선택하면 평생 보기 힘든 새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3종의 천연 기념물 외에도 목소리가 아름다운 큰유리새, 노랑깃털이 아름다운 꾀꼬리, 들꿩, 흰눈썹황금새, 노랑할미새, 찌르레기, 노랑턱멧새, 쇠유리새도 만날 수 있다. 또 산림에서 아주 이로운 새인 박새류, 깊은 산골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무당새, 벙어리뻐꾸기, 매사촌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흉년 풍년을 알린다는 소쩍새도 이 계절에 많이 만날 수 있는 조류다.

법흥사에 들렀다 식사를 할 시간이 되면 주천면소재지에 있는 서울식당(0373-72-4219)의 토종 소머리국밥이나 칡냉면, 순대국밥, 된장찌개, 매운탕과 제천식당(0373-73-7147)의 꼴두국수를 맛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음식들은 세계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하고 맛난 음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