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토픽은 조금 오래된 것 같은데, ‘드라마나 영화가 만화적 상상력의 영향력을 받고 있다’는 얘기는 1990년대 중반에 이미 나오지 않았나? (非방송기자 1)

“그때와는 세부적으로 약간 달라졌거든요, 예를 들어 요즘 드라마에서 보면 ‘학교’는 일반 사회에서 벌어질 수 없는 어떤 일이든지 가능한 공간으로 묘사되고… (방송 담당 기자 2)

“그렇다면 그 점을 포커싱(세부 확대)해서 쓰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환상공간이 된 학교’라든가 말이죠.” (非 방송기자 2)

매주 화요일 저녁 동아일보 편집국 회의실에서 열리는 문화부 주간회의 풍경이다. 이 회의는 매주 일어날 국내외 문화계 이벤트를 집약하는 토론의 장이 된다. 기자들이 학술, 문학, 종교, 방송, 영화, 공연 등 각 분야에서 안테나를 뻗어 정보를 수집해 분석한 ‘기사거리’를 털어놓고 동료 기자의 의견을 구한다. 당초 자그마한 기사거리로 생각되었던 뉴스가 커다란 기획 특집기사로 ‘발탁’되기도 하고, 의욕적으로 제기된 주제가 유보되거나 ‘킬’(기사화되지 못함)되기도 한다.

이 회의의 모습에서 미루어 보듯 문화부의 업무에는 ‘주간지적(的)’인 성격이 강하다. 요일에 따라 독자들이 주목하는 기사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말이 다가오면 독자들은 영화나 서적처럼 주말에 더불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문화상품 정보를 얻으려는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종교 관련 기사는 토요일에 가장 많이 읽힌다. 이런 기사의 성격에 따라 기사를 배치하기 때문에 문화부 기자들은 대개 주간 단위로 시간표를 계획해 기사를 기획하고 취재하고 작성한다.

그러나 ‘매일 기사를 마감해야 하는 부서에 비해 문화부는 속 편하구나, 기사를 마감한 요일에는 푹 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주간 단위로 기획하는 기사 외에도 쉴 새 없이 뉴스거리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문화부 기자들은 한시도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 비교적 ‘부드럽다’고 여겨지는 음악 분야만 해도 대형 공연 프로젝트가 갑자기 발표된다거나, 국악 문헌 관련 연구에서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공개된다거나, 한국인 예술가가 해외에서 괄목할 만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등의 새로운 뉴스가 요일을 가리지 않고 쏟아진다. 이런 뉴스들은 즉각 지면에 반영해야 한다. ‘매일’의 뉴스와 ‘매주’의 뉴스를 함께 취급하며 저글링(여러 개 공받기) 선수처럼 시간을 다루어야 하는 사람들이 문화부 기자인 것이다.

남들이 모두 식사하러 나가는 점심시간에 톡톡 자판을 두드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문화부이며, 24시간 쉼 없이 업무가 펼쳐지기에 서너 명의 팀이 회의를 갖기에도 시간을 조정하기가 영 마땅치 않은 부서 역시 문화부다.

그렇다면 바깥에서 보는 문화부 기자의 이미지, 즉 외모와 말투에서 한껏 멋을 내며 예술가와 종교지도자, 주목받는 학자들과 어울려 다니는 기자의 이미지는 사실과 동떨어진 것일까. 그것 역시 사실이다. 문화부 기자들에게는 ‘출입처’가 없다. 종교 담당 기자는 전국의 교회 사찰 성당 등이 모두 출입처다. 문학 담당 기자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출판사와 작가의 집필실, 자택, 술판이 모두 출입처다. 가볼 곳과 만날 사람의 제한이 없는 만큼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귀를 열어 놓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게 당대 문화계 명사들의 조언자 역할을 하기도 하고, 허물없는 친구처럼 그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친소에 관계없이 기사 작성에 있어서만큼은 최대한 객관적이며 중립적이어야만 하는 것도 문화부 기자의 운명이다.

이런 문화부 기자들은 ‘비평가’로서의 역할도 일부 떠맡게 된다. 사실관계의 전달 못지않게 문화 상품의 ‘품질’에 대한 점검도 중요한 기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집요하게 추적하고자 하는 기질을 소유한 사람에게 문화부 기자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문화부 기자에게는 명백한 사실을 빼먹는 ‘낙종’이 아니라 문화현상 속에 숨겨진 의미를 놓친다는 또 다른 ‘낙종’이 있으며, 때로 그것은 혼자만이 느낄 수 있지만 훨씬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